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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환 작성일16-11-18 09:29 조회9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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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짚이랍니다. 누런 황색에 지금은 생명이 다해 볼품없지만, 사람들이 소중히 취급하는 작물 중의 하나랍니다. 따뜻한 초여름, 모로 키워져 물이 찰랑대는 논에서 여름 내내 초록으로 하늘을 우러렀지요. 하늘이 높아가고 알곡이 여물기 시작하면, 초록은 차츰 황금빛으로 물들고 이윽고 벼로서의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우리 생은 그렇게 짧습니다. 알곡을 털린 몸뚱이는 미련 없이 논바닥에 버려집니다. 메뚜기와 참새 떼, 허수아비로 풍성하던 벌판은 헐벗은 모습이 되고 나는 물기 없는 바닥에 잘린 밑동을 베고 누웠지요. 

 

하늘이 높습니다. 높아진 하늘만큼 태양도 물러났을 텐데 볕이 따가운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눈을 감고 버텨도 볕은 내 몸 구석구석을 침투해 듭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서걱대는 소리는 나와 내 동료가 볕에 말라가는 소리입니다. 생명이 소멸하는 소리입니다. 사물을 구성한 원자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소리입니다. 해가 저물고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바람은 내 몸에 남은 한 방울의 수분까지도 앗아가고 우리는 그렇게 짚과 지푸라기로 황량한 풍경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버려지는 것이 맞습니다. 예초부터 버려질 운명이었으니까요. 콤바인의 거친 동체가 논바닥을 누비는 순간 나와 나의 일부는 무참히 분리되었습니다. 예정된 수순에 따른 것이지요. 나는 바닥에 눕고 나락은 하늘로 치솟습니다. 그리고 부대에 담겨 떠났답니다. 여름내 소중하게 키워지고 귀하게 자랐지만 결국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나락이었던 셈이지요. 누구도 볏짚을 가지려고 농사짓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버려집니다. 

 

바람 한 점 없는 허공에서 낙엽이 집니다. 놀이 물든 하늘에는 기러기가 갑니다. 나와 분리된 나의 일부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부대에 담겨 창고에 쌓였거나 쌀독에서 누군가의 곡식으로 저장되어 있겠지요. 수천 년, 수백 년을 그리했듯이 몇몇은 볍씨가 되어 새로운 삶을 이어갈 겁니다. 8천 년 넘게 사람들과 동거해 왔다고 합니다. 공생의 관계이지요. 자연계를 돌아볼 때 우리처럼 안정적으로 종자를 퍼뜨리는 생명도 흔치 않답니다. 미련 따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곳에 남겨지는 나의 이야기도 버려진 것에 대한 소외(疏外)나 허무한 소멸에 대한 술회(述懷)가 아닙니다. 무엇이든 사라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지요. 바람과 이슬과 볕으로의 환원이야말로 가장 편안한 안정(安定)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버려지고, 버려질 수만 있다면, 버려짐으로써 얻는 안식이야말로 진정한 평안 그 차제일 것입니다. 무릇 생명을 가진 만물 중 어느 것 하나 그와 같은 휴식을 기대하지 않는 생명체가 있을까요? 시간이 온전히 멈출 수만 있다면 그것은 차라리 축복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정지하지 않습니다.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부는 까닭입니다. 밑동이 잘리고 낱알을 잃음으로써 생물로서 일생은 마감했지만 우리는 ‘짚’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습니다. ‘볏짚’이라고도 하지요. 사람들은 쓸모없는 것에 이름을 짓지는 않습니다. 이슬에 젖고 볕에 말라도 쓰임새가 있는 사물은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 아니랍니다. 볏짚으로 다른 삶을 이어갑니다. 너른 벌판에 열을 갖추어 누워 있는 것도 잠깐의 휴식에 불과합니다. 볏짚의 용도는 셀 수 없이 많으니까요. 

 

가장 흔한 용도가 소의 여물입니다. 사람은 낱알을 먹고 소는 볏짚을 먹는 거지요. 하나의 생명이 소멸함으로써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 이것이 윤회(輪廻)가 아닐까요? 따라서 소멸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환원(還元)되고 또 환원되는 그 끝없는 영속(永續)의 과정에서 생명은 아주 짤막한 현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우리는 소의 여물이 됩니다. 그래서 추수가 끝난 논에는 하얀 비닐로 감싼 볏단 묶음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부패를 막고 발효를 위한 일종의 저장 수단인 셈이지요. 

 

한때는 가마니를 짜기도 하고 새끼를 꼬는 용도로도 사용했습니다. 무엇인가를 담고 무엇인가를 묶는 물건이 되었지요. 삼용이가 밤늦도록 삼았던 사월이의 신도 짚이 재료였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엔 초가의 지붕이 되고 비가 오는 날 두르던 도롱이도 짚으로 엮은 물건이랍니다. 멍석과 삼태기로도 변신하고, 함지를 이던 어머니의 머리에 놓이던 똬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흙담을 견고하게 하는데도 짚의 역할은 중요지요. 이렇듯 우리는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새로운 사연을 갖습니다. 

 

그중에도 가장 독특한 변신은 유약입니다. 도자기의 겉을 감싸는 재료이지요. 흙으로 빚어 수천 도의 고열을 견뎌야 비로소 완성되는 그것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재(灰)가 된답니다. 도공(陶工)은 한 무더기의 볏짚을 쌓고 불을 놓습니다. 불은 순식간에 타오릅니다. 불길 속의 볏짚은 형체 없는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한 줌의 재를 얻기 위해 도공은 수십 단의 볏짚을 다시 불 속에 던져 넣습니다. 분자가 나뉘고 원자로 쪼개져 타오르고 타오르던 불길은 마침내 사그라져 재가 됩니다.

 

사물이 타서 없어지는 것, 그것이 곧 사멸(死滅)을 뜻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그토록 고대하던 시간의 정지… 윤회의 끝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끝은 없습니다. 영원한 순환과 반복이 우주를 구성하는 본질이니까요. 짚은 재가 되었습니다. 지키고 선 도공은 비를 듭니다. 결이 고운 비로 씁니다. 없애기 위해 태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중히 재를 모읍니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 모습을 잃은 검정가루에 지나지 않지만, 도공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유약의 재료입니다. 

 

나는 재(灰)가 된 짚이랍니다. 까만 숯덩이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불에 탄 이유는 도자기의 겉을 치장할 잿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여물로, 가마니로, 짚신으로, 삼태기로… 다른 나의 형제가 여러 모습과 이름으로 거듭났지만, 본래의 형질(形質)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재는 사멸해야만 만들어지는 존재랍니다. 온전히 자신을 태워 없앰으로써 다른 무엇을 위해 거듭나는 것, 짚은 재가 되고 재는 유약(釉藥)이 됩니다. 머지않아 나는 빛으로 환생할 것입니다. 변치않는 광택이 되어 영원히 반짝이게 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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